살아가는이야기 2011. 9. 2. 15:17
제가 요새 푹 빠져 사는 미드가 '24'입니다. CTU(Counter Terror Unit) 요원 잭바우어를 중심으로 한 첩보액션물인데, 딱 24시간 동안 벌어지는 일들을 1시간에 1회씩, 24회를 한 시즌으로 하는 독특한 구성으로 되어 있죠. 미니 시리즈라기 보다는 러닝타임 24시간인 영화 같은 느낌 입니다.
액션도 액션입니다만, 여러 가지 극단적인 상황에서 어떤 판단을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해볼 수 있고 또 순수한 애국심 뒤에 숨은 정치라는 괴물이 얼마나 지저분하고 무서운 것인가도 볼 수 있어서 정말 재밌습니다.
이 24 시즌6에 탐 레녹스 라는 수석 보좌관이 등장합니다. 드라마에서 명확하게 드러나지는 않습니다만, 민주당 or 진보성향인 대통령 웨인 팔머를 보좌하는 보좌관 중 한 명이죠. 중동 쪽 테러리스트들의 핵 테러 위협에 대해 모든 중동계 사람들은 따로 분리를 해서 수용소로 구금해야 한다는 의견을 가진, 어찌보면 다소 극단적인 보수주의자입니다.
자기 의견에 반대하는 대통령을 설득할 수 없자 사임까지 고려하게 됩니다만, 자기 비서로 숨어든 극우 테러리스트의 대통령 암살 협조 요청에 대해서는 냉정히 선을 긋고, 오히려 신고를 해서 체포하게 합니다. 또 자기 의견에 사사건건 반대하는 온건 or 진보성향의 다른 수석보좌관의 약점을 잡아 강제로 사퇴를 하게 만들 정도로 자기 일에 열정이 있는 사람이긴 하나, 보수 성향의 부대통령이 뇌출혈로 쓰러진 대통령을 대신하게 된 결정적인 순간, 대통령에게 균형 잡힌 시각을 필요하다며 보좌관 자리를 유지하게 해줍니다.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이상적인 모습이기는 하겠으나, 이런 것이 진정한 민주사회의 보수주의자가 아닐까 합니다. 자기가 지향하는 이상, 가치관을 위해 양보 없이 전진하지만, 그 과정이 틀리면 그것이 아무 소용 없다는 것을 아는 사람. 보수든 진보든 이러한 큰 원칙을 포기 하지 않는다면 토론과 협상이라는 방법을 통해 세상이 더 나아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posted by Mr.앤더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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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이야기 2011. 7. 9. 02:26
제 동생은 대학 때 밴드를 했습니다. 대학가요제 출전한다고 학교 다니던 제 자취집으로 찾아왔던 적도 있지요. 하지만 저는 록음악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동생이 Mr.Big 이나 게리 무어의 음악에 심취해 있을 때도 저는 그냥 시끄러운 음악이라 생각했었습니다. 아, 그 때 동생이 소개 해주었던 게리 무어의 'Still got the blues'를 좋아하긴 했었네요.

얼마 전에 임재범이 나는 가수다에 등장했습니다. 3곡인가 노래를 부르고 맹장 수술 때문에 나가수를 떠났는데도 임재범 신드롬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저에게 임재범은 '사랑보다 깊은 상처', '너를 위해' 등을 부른 가수로 기억되는 사람입니다. 어렴풋이 시나위의 보컬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정도 였는데, TV에 유리한 댄스음악들이 대중음악을 장악하면서 무지하게 먹고 살기가 힘들었나 봅니다. 
비슷한 삶을 살아온 다른 사람들의 얘기가 오늘 MBC스페셜 '나는 록의 전설이다' 편에 소개가 되었습니다. 록 중에서도 가장 하드한 헤비메탈 쪽 밴드 백두산의 보컬이었던 유현상은 트롯트 가수로, 시나위의 보컬이었던 김종서, 부활의 보컬이었던 이승철은 솔로로 나서서 먹고 사는 길을 찾아야 했었습니다. 그나마 보컬들은 사정이 나았었더군요. 밴드의 핵심, 기타 리스트들은 그야 말로 궁기가 줄줄 흐르는 삶을 살았더군요. 백두산의 김도균, 부활의 김태원, 시나위의 신대철...
음악적 자존심 때문에 차라리 걸어 다니고, 굶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던 그들이 40대가 되어 돌아왔습니다. 처음부터 록 밴드로 돌아온 것이 아닙니다. 예능프로그램에서 먼저 얼굴을 비췄지요. 김태원, 라디오 스타에서 입담을 과시하면서 얼굴을 알리더니 '남자의 자격', '위대한 탄생'으로 완전히 인기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예능 프로그램 출연을 결심하게 되었던 것은 자폐를 앓고 있는 그의 아들 때문이었습니다. 아들보다 딱 하루만 더 살기를 소원하는 그의 아내, 바로 그 지점에서 그는 예능 출연도 마다하지 않는 로커가 되었습니다. 노래하는 그도 아름답고, 예능하는 그도 아름답습니다.
임재범은 더 애절 합니다. 갑상선 암이 간과 폐까지 전이된 아내의 치료비가 절박했던 그는, 기대하지 않고 섭외했던 사람들을 놀래키며 스스로 '나는 가수다'에 출연했습니다. 노래 하면서 그의 눈에 글썽였던 눈물은 '쑈'가 아니었습니다.

생계를 위해, 자존심을 굽히는 로커는 창피해 해야 하는 것일까요?

식구를 먹여 살리지 못하면 어떤 명문도, 어떤 사상도 아무 쓸데 없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그렇게 자존심을 굽히고 다시 세상으로 나온 그들이 정말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누구든 자기 식구들을 먹여 살리는 일은 아름다우며, 어느 누구도 욕할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결국 그들의 그러한 결정이, 댄스 음악 일변도이던 우리 나라 대중 음악계에 다른 음악도 있다는 것을 알리게 되었습니다.
유명한 밴들의 리더가 아니라, 남자의 자격 국민 할매을 보기 위해서라도 부활의 콘서트를 보러 오는 사람이 생겼습니다. 시나위의 보컬인지는 몰랐지만, '나는 가수다'의 폭풍 가창력 임재범을 보러 콘서트 장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납니다.

나도 이제 사십대에 들어섰습니다. 길었던 춥고 배고픈 시절을 버텨내고, 자기가 사랑하던 일을 결국 이루어낸 이 40대 로커들이 존경스럽습니다. 잠시 국민할매가 되었다고 해도, 그들은 로커로 살아 남았습니다.

강한 자가 살아 남는 것이 아니고, 살아 남는 자가 강한 것이죠.

살아가야 할, 아직은 많이 남은 세월. 그 세월을 그렇게 버텨내야 하겠습니다.



posted by Mr.앤더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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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이야기 2011. 7. 5. 03:14

잭 바우어를 아시는지? 그렇다면 당신은 미드 깨나 봐온 사람일 것이다.
24시 라는 독특한 미드의 주인공인 잭 바우어는 CTU(Counter Terror Unit) 이라는 정보기관의 연방요원이다. 실제 사건이 일어난 시간 대로, 한 시간에 1개 에피소드 씩 24회를 한 시즌으로 진행되는 이 미드를 안보셨다면, 굳이 시작할 것을 권하지 않는다. 당신은 24시간 동안 식음을 전폐하고 이 미드를 붙들고 있게 될 것이다!!!
잭 바우어는 기존의 첩보물 주인공과 다른, 좀 독특한 캐릭터이다. 그는 굉장히, 정말로 굉장히 애국자이고, 목적을 위해서는 어떤 희생도 마다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시즌3에서, 치명적인 바이러스를 살포하겠다는 테러리스트가 CTU의 간부인 라이언 샤펠을 죽이라는 요구를 대통령에게 해온다. 이미 바이러스가 살포되어 한 개 호텔에 있던 무고한 사람 800명이 죽어가고 있던 터라, 대통령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하고 샤펠은 바우어의 손에 죽는다.
멕시코 마약왕에게 위장 침투하기 위해, 그의 신임을 얻으려고 재판에서 불리한 증언을 할 다른 악당을 죽여 머리를 잘라 가기도 하고, 필요한 정보를 얻기 위해 잡힌 테러리스트를 고문하고, 다리에 총을 쏘고, 심지어 테러리스트의 어린 아들을 죽이라는 명령을 내리기도 한다. 물론 조작된 화면을 보여 주는 거였지만, 아이들에 대한 미국인의 정서를 고려해서 그렇게 한 것이지 실제 상황이면 정말 총을 쏴서 죽이고도 남을 사람이 잭 바우어다.
어쨋거나 "정의란 무엇인가" 책에 사례로 나올 만한 극단적인 상황들이 계속 이어지는 이 미드에서 나는 미국적 실용주의가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수백만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나라를 위해 충성을 다했던 첩보기관의 요원을 죽여야 한다면?
핵폭탄이 어디 있는지 알기 위해서, 테러리스트의 어린 아들을 죽이라고 명령한다면?
폭발하려는 시한 폭탄이 동료 요원은 손에 묶여 있는데 해체할 방법이 없다면?

이 질문들에 대해 잭 바우어는 무고한 요원을 죽이고, 어린 아이에게라도 총을 쏴대며, 동료 요원의 팔을 도끼로 잘라버리는 선택을 한다.

간단한 산수라면, 잭 바우어의 선택은 옳다.  무고한 한 사람을 죽여서 수백만을 구했고, 어린아이 한명에게 총을 들이대어서 핵폭탄의 위치를 알아 냈으며, 동료의 손목을 잘라 자기와 동료와 나아가서 수백만의 목숨까지 구했다.

그러나 세상은 그렇게 덧셈 뺄셈만으로 해결이 되는 것일까?

더 많은 나쁜 놈들을 잡기 위해 정보를 제공해주는 좀  덜 나쁜 놈은 용서하거나 감형해주는 미국의 법제도는 그런 실용적인 판단으로 얼마나 더 건강해졌을까? 죄를 지으면 벌을 받는다는 단순한 진리가 무시되고 있는 미국이, 과연 훌륭한 법제도를 가지고 있다 할 수 있을까?
수백만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한명의 무고하고 충성스런 요원을 죽여버리는 나라에서 과연 어떤 사람이 안심하고 살아갈 것인가?

큰 희생을 막기 위해 작은 희생은 무시되어도 좋은 것인가? 아니, 큰 희생, 작은 희생은 도대체 누가 판단할 수 있는 것인가? 

24시에 나오는 수많은 극단적인 상황들에서, 나는 과연 어떤 판단을 하게 될 것인지, 또 우리 사회는, 우리 나라는 어떤 판단을 하는 것이 맞는지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posted by Mr.앤더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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