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이야기 2011. 7. 9. 02:26
제 동생은 대학 때 밴드를 했습니다. 대학가요제 출전한다고 학교 다니던 제 자취집으로 찾아왔던 적도 있지요. 하지만 저는 록음악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동생이 Mr.Big 이나 게리 무어의 음악에 심취해 있을 때도 저는 그냥 시끄러운 음악이라 생각했었습니다. 아, 그 때 동생이 소개 해주었던 게리 무어의 'Still got the blues'를 좋아하긴 했었네요.

얼마 전에 임재범이 나는 가수다에 등장했습니다. 3곡인가 노래를 부르고 맹장 수술 때문에 나가수를 떠났는데도 임재범 신드롬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저에게 임재범은 '사랑보다 깊은 상처', '너를 위해' 등을 부른 가수로 기억되는 사람입니다. 어렴풋이 시나위의 보컬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정도 였는데, TV에 유리한 댄스음악들이 대중음악을 장악하면서 무지하게 먹고 살기가 힘들었나 봅니다. 
비슷한 삶을 살아온 다른 사람들의 얘기가 오늘 MBC스페셜 '나는 록의 전설이다' 편에 소개가 되었습니다. 록 중에서도 가장 하드한 헤비메탈 쪽 밴드 백두산의 보컬이었던 유현상은 트롯트 가수로, 시나위의 보컬이었던 김종서, 부활의 보컬이었던 이승철은 솔로로 나서서 먹고 사는 길을 찾아야 했었습니다. 그나마 보컬들은 사정이 나았었더군요. 밴드의 핵심, 기타 리스트들은 그야 말로 궁기가 줄줄 흐르는 삶을 살았더군요. 백두산의 김도균, 부활의 김태원, 시나위의 신대철...
음악적 자존심 때문에 차라리 걸어 다니고, 굶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던 그들이 40대가 되어 돌아왔습니다. 처음부터 록 밴드로 돌아온 것이 아닙니다. 예능프로그램에서 먼저 얼굴을 비췄지요. 김태원, 라디오 스타에서 입담을 과시하면서 얼굴을 알리더니 '남자의 자격', '위대한 탄생'으로 완전히 인기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예능 프로그램 출연을 결심하게 되었던 것은 자폐를 앓고 있는 그의 아들 때문이었습니다. 아들보다 딱 하루만 더 살기를 소원하는 그의 아내, 바로 그 지점에서 그는 예능 출연도 마다하지 않는 로커가 되었습니다. 노래하는 그도 아름답고, 예능하는 그도 아름답습니다.
임재범은 더 애절 합니다. 갑상선 암이 간과 폐까지 전이된 아내의 치료비가 절박했던 그는, 기대하지 않고 섭외했던 사람들을 놀래키며 스스로 '나는 가수다'에 출연했습니다. 노래 하면서 그의 눈에 글썽였던 눈물은 '쑈'가 아니었습니다.

생계를 위해, 자존심을 굽히는 로커는 창피해 해야 하는 것일까요?

식구를 먹여 살리지 못하면 어떤 명문도, 어떤 사상도 아무 쓸데 없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그렇게 자존심을 굽히고 다시 세상으로 나온 그들이 정말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누구든 자기 식구들을 먹여 살리는 일은 아름다우며, 어느 누구도 욕할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결국 그들의 그러한 결정이, 댄스 음악 일변도이던 우리 나라 대중 음악계에 다른 음악도 있다는 것을 알리게 되었습니다.
유명한 밴들의 리더가 아니라, 남자의 자격 국민 할매을 보기 위해서라도 부활의 콘서트를 보러 오는 사람이 생겼습니다. 시나위의 보컬인지는 몰랐지만, '나는 가수다'의 폭풍 가창력 임재범을 보러 콘서트 장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납니다.

나도 이제 사십대에 들어섰습니다. 길었던 춥고 배고픈 시절을 버텨내고, 자기가 사랑하던 일을 결국 이루어낸 이 40대 로커들이 존경스럽습니다. 잠시 국민할매가 되었다고 해도, 그들은 로커로 살아 남았습니다.

강한 자가 살아 남는 것이 아니고, 살아 남는 자가 강한 것이죠.

살아가야 할, 아직은 많이 남은 세월. 그 세월을 그렇게 버텨내야 하겠습니다.



posted by Mr.앤더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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