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이야기 2011. 7. 5. 03:14

잭 바우어를 아시는지? 그렇다면 당신은 미드 깨나 봐온 사람일 것이다.
24시 라는 독특한 미드의 주인공인 잭 바우어는 CTU(Counter Terror Unit) 이라는 정보기관의 연방요원이다. 실제 사건이 일어난 시간 대로, 한 시간에 1개 에피소드 씩 24회를 한 시즌으로 진행되는 이 미드를 안보셨다면, 굳이 시작할 것을 권하지 않는다. 당신은 24시간 동안 식음을 전폐하고 이 미드를 붙들고 있게 될 것이다!!!
잭 바우어는 기존의 첩보물 주인공과 다른, 좀 독특한 캐릭터이다. 그는 굉장히, 정말로 굉장히 애국자이고, 목적을 위해서는 어떤 희생도 마다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시즌3에서, 치명적인 바이러스를 살포하겠다는 테러리스트가 CTU의 간부인 라이언 샤펠을 죽이라는 요구를 대통령에게 해온다. 이미 바이러스가 살포되어 한 개 호텔에 있던 무고한 사람 800명이 죽어가고 있던 터라, 대통령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하고 샤펠은 바우어의 손에 죽는다.
멕시코 마약왕에게 위장 침투하기 위해, 그의 신임을 얻으려고 재판에서 불리한 증언을 할 다른 악당을 죽여 머리를 잘라 가기도 하고, 필요한 정보를 얻기 위해 잡힌 테러리스트를 고문하고, 다리에 총을 쏘고, 심지어 테러리스트의 어린 아들을 죽이라는 명령을 내리기도 한다. 물론 조작된 화면을 보여 주는 거였지만, 아이들에 대한 미국인의 정서를 고려해서 그렇게 한 것이지 실제 상황이면 정말 총을 쏴서 죽이고도 남을 사람이 잭 바우어다.
어쨋거나 "정의란 무엇인가" 책에 사례로 나올 만한 극단적인 상황들이 계속 이어지는 이 미드에서 나는 미국적 실용주의가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수백만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나라를 위해 충성을 다했던 첩보기관의 요원을 죽여야 한다면?
핵폭탄이 어디 있는지 알기 위해서, 테러리스트의 어린 아들을 죽이라고 명령한다면?
폭발하려는 시한 폭탄이 동료 요원은 손에 묶여 있는데 해체할 방법이 없다면?

이 질문들에 대해 잭 바우어는 무고한 요원을 죽이고, 어린 아이에게라도 총을 쏴대며, 동료 요원의 팔을 도끼로 잘라버리는 선택을 한다.

간단한 산수라면, 잭 바우어의 선택은 옳다.  무고한 한 사람을 죽여서 수백만을 구했고, 어린아이 한명에게 총을 들이대어서 핵폭탄의 위치를 알아 냈으며, 동료의 손목을 잘라 자기와 동료와 나아가서 수백만의 목숨까지 구했다.

그러나 세상은 그렇게 덧셈 뺄셈만으로 해결이 되는 것일까?

더 많은 나쁜 놈들을 잡기 위해 정보를 제공해주는 좀  덜 나쁜 놈은 용서하거나 감형해주는 미국의 법제도는 그런 실용적인 판단으로 얼마나 더 건강해졌을까? 죄를 지으면 벌을 받는다는 단순한 진리가 무시되고 있는 미국이, 과연 훌륭한 법제도를 가지고 있다 할 수 있을까?
수백만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한명의 무고하고 충성스런 요원을 죽여버리는 나라에서 과연 어떤 사람이 안심하고 살아갈 것인가?

큰 희생을 막기 위해 작은 희생은 무시되어도 좋은 것인가? 아니, 큰 희생, 작은 희생은 도대체 누가 판단할 수 있는 것인가? 

24시에 나오는 수많은 극단적인 상황들에서, 나는 과연 어떤 판단을 하게 될 것인지, 또 우리 사회는, 우리 나라는 어떤 판단을 하는 것이 맞는지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posted by Mr.앤더슨
: